범어로 kashaya, kasaya. 가라사예(迦羅沙曳)・가사(加沙)・가사(毠) 등으로 음역(音譯)되고 있다. 불교의 창성기 때 불교 교단에 속하는 승려나 여자 중을 위해 인도에서 정해진 규정의 복장. 네모 반듯한 모양의 3장의 천으로 삼의(三衣), 삼지박라(三支縛羅)라고 불린다.
가사를 의역하면 부정색(不正色, 오정색 이외의 색, 탁한 중간색) 또는 회색(壞色)의 의미가 있다. 일반 사람들이 백색 혹은 정색(正色)을 이용하는데 대해서 이 가사색이 불교 교단에 속하는 사람들의 제복의 특징으로 보았기 때문에 가사라는 말이 승복의 이름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가사의 조건은 세속적인 탐욕심을 일으키지 않도록 스스로를 무가치한 것으로 여기는데 이것을 천(賤)이라고 한다. 천에 이르는 데에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체(體)・도(刀)・색(色)의 세 종류로서 체천(體賤)이란 버려진 분소(糞掃) 또는 여기에 준하는 저급의 재료를 사용하는 일이다. 도천(刀賤)이란 피륙을 재단하여 무가치한 것으로 하고, 이것을 재차 봉제하여 한 장의 천으로 만든 것을 말한다. 색천(色賤)이란 아름다움을 느끼는 오정색(다섯 가지의 정식적인 색). 즉 청・적・황・흑・백 및 여기에 이어지는 오간색(五間色), 즉 홍・푸른색・녹색・유황・보라를 제외한 부정색(不正色)으로서 즉 회색(壞色)으로 물들이는 일이다. 이 색이 가사의 색으로서 더러워진 청색, 흙탕물과 같이 탁해진 엷은 먹색, 적진(赤塵)으로 더러워진 꼭두서니색의 세 종류이다. 다른 표현으로 한다면 동기(銅器)에 생기는 녹슨 색이나 주석의 녹슨 색, 철의 녹슨 색 또는 모란 수피의 색, 즉 건타색(乾陀色)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이다.
가사에는 대・중・소인 3장의 구별이 있으며, 대를 승가리(僧伽梨, sanghati), 중을 울다라숭(鬱多羅僧, uttarasanga), 소를 안저라바사(安但羅婆裟, antaravasaka)라고 한다. 또 가사는 대의(大衣)・중의(中衣)・소의(小衣)로 나뉘어진다. 대의를 최상의(最上衣), 중의를 상의로 하고 소의를 하의로 하여 허리에 걸치는 치마로 이용한다. 대의는 안이 붙어 있고 왕궁이나 촌락에 들어갈 때에 이용한다. 중의는 평상의 예불이나 불경을 욀 때에, 하의는 승원내의 잡무시에 사용되며 홑옷이 보통이다. 이 규정은 오늘날에도 남방 불교에 있어서는 지켜지고 있다. 또한 정식의 대의는 보통 25조・23조・21조・19조・17조・15조・13조・11조・9조의 9종으로 하고 있다. 그것을 상품・중품・하품으로 크게 나누고 또한 각각을 상생(上生)・중생(中生)・하생(下生)의 세 가지로 나누어서 상기의 9종으로 한다. 중의를 7조, 소의를 5조로 하고 각각 세로의 이음선이 있다. 또한 가로에도 3~5의 이음선이 있다.
가사를 만드는 재료는 야잠의 견・목면・양모・마・새털 등 여러 가지 물건을 사용하며, 특히 고급 직물을 금하고 있으나 시대를 경과함에 따라서 또 승려의 지위 향상과 함께 고급스럽다기보다도 오히려 최고의 옷감이 가사에 사용되는 경우도 종종 행해지며 특히 북방에서 도래한 북전(北傳)불교에 있어서는 현저하다.
착장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통견(通肩)이라고 하며, 다른 것을 편담우견(偏袒右肩)이라고 한다. 통견은 양어깨를 덮는 방법으로 설법이나 도중(道中)일 때에 이용한다. 편담우견은 오른쪽 어깨를 노출시킨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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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따로 수행 따로
이는 무엇을 말할까. 승복은 권위의 상징과도 같다는 말이다. 빳빳하게 풀을 먹인 삼배옷, 긴소매를 특징으로 하는 승복은 오로지 스님들만 입는 것으로서 권위를 상징한다.
그런데 또 하나의 권위를 상징하는 옷이 있다. 그것은 가사이다. 그러나 한국불교에서 가사는 특별한 경우에만 걸친다는 것이다. 그런 가사는 보통 붉은 색 계통의 괴색으로서 오른 쪽 어깨를 드러낸 겉옷이다. 그래서 예불 등 의식을 행 할 때만 걸칠 뿐 평소에는 입지 않는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스님들의 살아가는 방식이 ‘삶 따로 수행 따로’ 이기 때문이다. 가사 입는 것 하나만 보아도 삶과 수행이 일치 하지 않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삶 따로 수행 따로가 되다 보니 가사는 법당용이고, 법당을 떠나서는 일반승복이다.
그래서 일반승복차림으로 무슨 일이든지 다 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림을 그린다든지 노래를 한다든지 심지어 골프를 치고 스킨스쿠버까지 못하는 것이 없다. 만약 항상 붉은 색 가사를 걸치고 있다면 신변잡기와 취미생활이 가능할까.
하루 종일 가사를 입고 생활하는 테라와다불교
이에 반하여 테라와다불교권의 비구들은 가사는 일상적인 것이다. 하루 종일 가사를 입고 생활하기 때문이다. 오로지 세 벌 밖에 되지 않는 가사를 입고 자고, 좌선을 하고, 탁발을 나가기도 한다. 한마디로 삶과 수행이 일치하는 것이다.
중복가사 (saṅghāṭi, 상가띠)
가사를 입고 산다는 것은 부처님의 방식대로 살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그림을 그린다든지 노래를 한다든지 골프, 스킨스쿠버 등은 꿈 도 꿀 수 없는 것이다.
각 불교전통의 승복
참고로 붓다네트(http://www.buddhanet.net/ )에서 본 각 불교전통의 승복을 보면 다음과 같다.
대승불교권 승복
테라와다 불교권 승복
미얀마(Burmese Monk's Robes ,Myanmar)
스리랑카(Sri Lankan Monk's Robes)
한국불교개혁은 가사입기 생활화부터
시범적으로라도 탁발을 도입하자는 각묵스님의 주장에 동의한다. 그러나 한국불교의 현실에서 전혀 먹혀 들어 가지 않는 것 같다. 이는 한국불교에 탁발전통도 없을 뿐만 아니라 탁발정신이 완전히 실종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설령 시범적으로 탁발을 한다고 하여도 스님들의 권위가 손상된다고 생각할지 모르기 때문에 더욱 더 실현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된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그것은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부처님 법대로 산다면 탁발은 당연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탁발을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를 들라면 승복을 들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삶 따로 수행따로 승복’이기 때문이다.
한국불교에 있어서 가사는 오로지 예불 등 의식용에 지나지 않는다. 평상시에는 걸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제 어디서나 가사를 걸치고 있다면 부처님의 제자로 볼 수 있다.
항상 가사를 입고 있다면 온갖 승풍실추 사건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한국불교가 변모 하려면 스님들이 가사를 생활화 해야 한다. 한국불교의 개혁은 가사입기 운동에서부터 시작 되는 것은 아닐까.
인도의 옛 수상 네루의 이름에서 유래된 명칭으로, 원통형의 크라운
[ 크라운이란 ????
모자의 윗부분을 말한다. 또한 이・미용 용어로 머리 꼭대기 부분을 말할 때도 있다.]
만으로 모자 위가 평평하게 된 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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